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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100년 동안의 기억괌 SMS 코모란Ⅱ 100주년 기념행사

Guam 기획 -1

처음 본 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구無垢’라 하겠다. 시시각각 하늘빛을 반영하는 바다, 순결한 백사장, 깨끗한 공기. 짓궂게 내리는 스콜마저 이내 ‘곧 괜찮아질 거야’라는 태평한 믿음으로 변한다. 많은 관광객이 이 곳을 찾는 것도 번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섬의 무구함을 즐기기 위함이리라.

걱정도 아픔도 없는 듯한 곳.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괌’ 곳곳에는 역사적 생채기가 있다. 미국령으로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남겨진 전쟁의 흔적들이 그것이다. 18세기 이후 미국에 있어 괌은 아시아에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전략적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아프라(Apra)항 바다 아래 잠들어 있는 SMS 코모란 II 호(SMS Cormoran II)도 그런 흔적 중 하나다. SMS 코모란 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침몰, 어느새 100년이란 세월을 지나며 많은 이들에게 기념되고 있다. 지난 4월7일, 괌정부관광청이 개최한 ‘SMS 코모란Ⅱ 100주년 기념행사’에 함께했다.

4월7일 아침 8시3분, 망망대해 위 종소리가 울리고 붉은 색 옷을 입은 차모로 여인이 기타선율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50여명의 사람을 태운 배 서너 대가 바다 위 한 자리를 맴돌았고 그녀의 구슬픈듯 담담한 목소리에 모두가 숙연해 졌다. 1917년 괌에서 잠든 SMS 코모란 함선 수몰 100주년을 기리는 노래였다. 

 

전쟁 속 평화 ‘SMS 코모란 II’

SMS 코모란 호는 미국과 괌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코모란 호는 1909년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져 ‘SS Ryanzan’이라는 이름의 러시아 상선대(商船隊)로 이용됐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와 독일이 적대관계가 되자 독일의 SMS Emden가 1914년 8월4일 중국 칭다오에서 다시 배를 나포한다. 이후 배는 ‘SMS 코모란II’란 이름의 순양함이 돼 남태평양을 항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배는 이내 일본 함대의 타겟이 된다. 쫓기고 쫓긴 끝에 같은 해 12월14일 연료가 거의 고갈된 채 괌 아프라 항에 도달한다.

당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선언한 미국은 연료 공급을 거부했고 코모란 호 내 373명의 독일 선원들은 약 2년 갑판 안에서 머물게 된다. 이후 윌리엄 P. 크로난이 임시총독을 맡게 되며 선원들은 괌에서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코모란 선원들과 괌 차모로 원주민 간에는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됐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1917년 4월6일 미국이 공식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괌은 SMS 코모란 호의 항복을 명령했다. 그러나 당시 코모란 호 선장은 항복 대신 코모란 호를 침몰시키는 것이 독일을 위하는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윽고 4월7일 오전 8시3분, 발포 4분만에 성공적으로 괌 아프라 항구에 배를 침몰시켰다. 이때 미처 배에서 내리지 못한 7명의 선원은 목숨을 잃게 됐지만 그들의 시신은 U.S 해군묘지에 안장됐고 나머지 선원들도 미국에 전쟁포로로 지내다 전쟁 후 고향으로 보내졌다.

전쟁 중임에도 많은 선원이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괌 주민과 독일 선원 간의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SMS 코모란 II호 침몰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미국의 첫 총탄이라는 의미와 함께 미국과 독일 간 평화와 우호의 상징이 됐다.

 

SMS 코모란Ⅱ 100주년 기념행사

한·일·중·러 외 동남아 지역 미디어와 괌 관광청 관계자들이 함께한 이날 행사는 총 2회로 나눠 진행됐다. 1차 행사는 아침 8시3분 코모란 호가 침몰한 지역을 찾아 목숨을 잃은 7명의 선원들의 넋을 기렸고 차모로 원주민들의 노래와 함께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참가한 지역 대표들의 애도사가 이어졌다. 지난 전쟁의 아픔과 현재의 평화에 대한 엄숙함, 안도, 경각심이 일출과 함께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두 번째 추모 행사는 SMS 코모란 기념비와 당시 목숨을 잃은 7인의 독일 선원들이 안장된 아가냐(Agana) U.S 해군묘지에서 진행됐다. 추모식 직전 스콜이 내렸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쨍쨍한 하늘이 추모객들을 맞이했다. 필라 라구아나(Pilar Laguana) 괌 글로벌 마케팅 이사는 이를 보고 “축복”이라 말했다. 지역 관계자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쇼샤나 S. 채트필드(Shoshana S. Chatfiled) 미 해군소장 역시 이날 행사에 참석해 “SMS 코모란 II는 우리에게 성숙한 가치를 남겼다. 이 함선은 나라간 충돌을 평화롭게 풀려고 했던 노력의 산물이다. 평화를 지키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노력 속에서 SMS 코모란 II의 가치는 이곳을 찾는 모든 관광객과 다이버들에 ‘희망’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은 미국문화와 차모로 전통문화가 결합되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군악대는 미국 국가, 독일 국가를 연주했으며 이어 차모로 족의 춤과 노래는 이어졌다. 후에는 SMS 코모란기념비와 7인의 선원 묘지에 헌화를 함과 동시에 차모로 전통 추모식이 진행됐다. 차모로 부족장은 하늘 높이 기도를 드리며 강황가루를 묘비에 뿌리고 코코넛을 앞에 두었다. 괌의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차모로족의 피부를 보호하는 강황가루는 ‘축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코코넛은 이들에게 ‘생명’을 의미하고 있다. 이윽고 차모로 족의 샤먼이 ‘정화’의 의미를 가진 물을 묘비에 뿌리며 의식을 마쳤다.

 

 

전쟁과 전쟁 사이를 헤엄치다

세계 유일 난파선 다이빙 포인트

“배 한척 정도 가라앉아야 가볼만하다”는 다이버들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치른 괌에서 바다 속에 가라앉은 전쟁 잔해나 난파선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중 아프라 항은 파도가 아무리 거세도 365일 다이빙을 할 수 있어 아메리칸 탱커, 키조가와 마루, 봄버, 핑거 리프, 갭갭 등 수많은 다이빙 포인트가 있다.

하지만 그 중 ‘SMS 코모란 II’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색 다이빙 포인트라 할 수 있다. 1943년 8월27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잠수함 어뢰 공격으로 일본 화물선 ‘도카이 마루’가 코모란 호 곁에 침몰했기 때문. 제1차 세계대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중 침몰한 두 난파선을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다이빙 포인트가 됐다. 한 번의 다이빙으로 26년의 세월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전 세계 다이버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토카이 마루는 12m~38m 수심, 코모란 호는 21m~38m 수심에 걸쳐 놓여 있다. 토카이 마루는 코모란 호의 선미 부분 위에 배 가운데가 올라타 있는 형식으로 돼 있다. 토카이마루는 수심이 얕아 초보자가 다이빙 할 수 있으나 코모란 호는 어드밴스 급 이상의 다이빙 코스다.

이날 100주년 행사에서 직접 다이빙 포인트를 찾은 전문 다이버들은 “코모란 호의 경우 워낙 선체가 크기 때문에 배 아랫부분의 경우 20층 정도의 건물위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배 시야는 좋지 않은 편이지만 컴컴한 배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으스스함이 쾌락으로 다가온다. 또 수직으로 솟은 물고기 떼가 장관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토카이 마루 역시 “배 밑창은 어둡고 굉장히 아래에 있다. 배 안에도 부유물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동그란 창으로 보이는 파란 바다 풍경은 아름답다”고 평했다.

에디 바자 칼보(Eddie Baza Calbo) 괌 주지사와 레이 테노리오(Ray Tenorio) 괌 부주지사는 “SMS 코모란 Ⅱ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세계적 다이빙 포인트로서 많은 이들이 찾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SMS 코모란 Ⅱ, 앞으로 괌 평화의 상징과 다이빙 포인트로서 많은 관광객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이채현 기자  ych@ktnb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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