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산업의 영원한 선구자… 조양호 회장
항공산업의 영원한 선구자… 조양호 회장
  • 이예린 기자
  • 승인 2019.04.15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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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輸送報國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향년 7048일 새벽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1949년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1974년 대한항공에 몸담은 이래로 반세기 동안 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더불어 대한민국 항공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이며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위기를 이겨내는 선견지명

조회장은 정비·자재·기획·IT·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위기대처에 능한 그는 세계 항공업계 경쟁의 서막을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창설 주도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결국 대한항공은 위기를 이겨내고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항공업계가 FSCLCC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대한항공과 차별화 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하여 2008년 진에어를 창립했다.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다

항공업계 모임에 위원을 도맡아 전 세계 항공 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냈다. 조 회장의 IATA에서의 위상은 2019년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 기폭제가 됐다.

또한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 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2005년 몽골로부터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조 회장은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 회장이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성사시킨 것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한국도 세계적인 문화 사업에 후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국가적인 위상도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

평창동계올림픽 이끌어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64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 동안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한국언론인 연합회 주최로 열린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에서 최고 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20121월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한편 조 회장은 2014년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까지 맡아 지지부진하던 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경기장 및 개·폐회식장 준공 기반을 만드는 한편, 월드컵 테스트 이벤트를 성사시키는 등 평창동계올림픽을 궤도에 올렸다. 개최 당시에는 조직위원장이 아니었음에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양호 회장은 항공사의 생명은 서비스이고 최상의 서비스야말로 최고의 항공사를 평가받는 길이라고 보고 고객중심 경영에 중점을 뒀다. 조회장은 48일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 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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