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설레는 그곳에 다시 가다
인도, 설레는 그곳에 다시 가다
  • 한국관광신문
  • 승인 2019.05.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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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도, 설레는 그곳에 다시 가다 <>

인도, 그들의 이야기와 마주하다 <>

인도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은 가난과 불청결 이야기를 꺼낸다. 낙후된 관광 인프라를 보유한 나라로 떠나는 여행을 꺼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수 있겠지만, 직접 찾은 인도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고, 여행객을 위해 발 벋고 나서거나 같이 사진 찍자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인도 위에 내려앉았던 오해의 먼지를 걷어내자 나타난 진짜인도의 풍경. 그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인도 = 박정선

20181111일 우리끼리 2차 인도여행 안내문이 밴드에 공지되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첫 번째로 신청을 했다. 2018425일에 우리끼리 1차 인도여행을 저렴한 가격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인디아여행사 정창숙 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인도여행을 전문으로 알선하고 현지 랜드사도 운영한다. 델리에 직원들만 50명이 근무한다. 우리나라 인도여행의 60%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정창숙 사장의 지원을 통해 인도를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여행자중 일부는 가난 더러움 불합리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더 이상 인도는 가기 싫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참석자가 지난번 보다가 적었다. 출발일이 다가오자 준비물 공지가 뜨고 카톡방이 분주하다. 내게 여행은 그곳이 어디든 설렘으로 다가온다.

델리의 첫 일정으로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을 차로 구경했다. 대통령궁은 비교적 넓은 잔디광장이 있고 영국 고전 건축과 인도 전통건축 양식이 조화된 웅장한 건축물이다. 1913~30년에 걸쳐 완공되었으며 영국 식민지 시대에는 총독관저로 쓰였다. 그 맞은편으로 넓은 도로 가운데 마치 프랑스 개선문을 연상하는 인디아 게이트가 우뚝 서 있다. 인디아 게이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인도군인들의 위령탑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시크교사원이다. 정식명칭은 그루드와라방글라사힙이다. ‘사힙은 인도어로 사원을 뜻한다. 입장료가 없다. 사원안에 들어가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수건을 나누어 주는데 머리에 두건처럼 둘러야 한다. 사원 뒤쪽엔 계단을 내려가면 커다란 직사각형 연못이 있다. 깊지 않아 누구나 남녀노소 들어갈 수 있는 수영장 같기도 하다. 신도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죄사함을 받는다. 사원에서는 방문자의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방문객에게 쉴 곳과 식사를 제공한다. 우리 일행도 큰 철판위에 큰 호떡 모양으로 둥글고 얇게 빚은 밀가루 반죽을 긴 쇠주걱으로 뒤집기를 해 보았다. 인도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이다.

그 다음으로 계단식 우물 아그리센키 바울리로 갔다. 건물 6~7층 깊이로 직사각형으로 계단식으로 파 내려간 큰 우물이다. 다음은 구뜹미나르를 구경했다. ’미나르이란 뜻이다. 73미터 높이의 거대한 탑이다. 1193년 이슬람교도로써 노예왕조를 건설한 쿠탑두드딘이 델리 최후의 힌두교 왕국을 패배 시킨 후 승전기념탑으로 건설한 것이다. 1층은 힌두 양식, 2층과 3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설계된 이 탑은 힌두와 이슬람 양식의 융합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다. 탑의 외벽에는 코란의 구절들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무굴제국 2대왕 후마윤의 묘에 갔다. 이곳도 구뜹탑 방문때와 마찬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표를 사서 들어가는데 표가 동전처럼 생겨서 잘 가지고 다니다가 나중에 나갈 때는 반납해야 한다. 이묘는 후마윤의 페르시아출신 첫 번째 부인 하지베검이 1565년 건설했다.

우리는 묘지구경을 마치고 입구 넓은 잔디밭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카쥬라호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는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차역까지 가는 데는 오토락샤를 타고 이동했다. 기차역에서 탑승장으로 들어가려면 공항처럼 소지품을 검색대에 통과시켜야 한다. 몸 수색도 한다. 종교 분쟁으로 테러에 대비하는 것이다. 기차 플랫폼에 도착하니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인도가족과 사진도 찍었다.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탑승 후 얼마 안 있어 승무원이 누런 봉투를 하나씩 준다. 시트2개와 담요 그리고 수건1개가 봉투에 들어 있다. 가이드가 저녁으로 KFC에서 구입한 치킨버거와 콜라 그리고 밥도시락을 나누어 준다. 그런데 우리는 2층 침대칸에 배정받아서 식사하기가 곤란했다. 1층 침대칸에 인도인들이 왔다. 그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자신들은 델리 근처의 삼성전자 공장에 근무한다고 한다. 한국업체에 근무한다니 무척 반가웠다. 우리는 양해를 구하고 1층 그들의 침대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만 식사하기가 미안해서 치킨버거를 나눠주려 하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사양한다. 콜라라도 주려니 이 역시 당분이 있다고 안 먹는다고 한다. 나는 건강한 식 습관을 가졌으니 오래 살겠다고 농담을 했더니 턱수염이 많아 거무스름한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준다.

식사 후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구글에서 근무도 했단다. 삼성에서는 한 사람은 1년반 다른 한 사람은 1년간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삼성과 구글을 다 근무한 경험으로 두 회사의 기업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물어 보았다. 내가 짐작한 대로였다. 그래도 외국인에게서 직접 체험담을 들어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그들은 조그만 나라 한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삼성, 현대자동차, 엘지 등의 세계적 기업을 가진것에 대해 부러워했다. 정작 한국에서는 일부 반기업정서가 만연하고 있는데 해외 나와보면 우리기업 간판을 봐도 기분좋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JP모간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주주에게 보낸 서한을 신문에서 봤다. 반 기업정서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중소기업뿐 아니라 성공한 대기업 없이 부강해진 나라는 없다“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비효율과 부패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갖추어야 한다대충 이런 내용이다. 공감이 간다.

밤이라 밖을 볼 수 없어서 그냥 윗층으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진동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다만 에어콘 소음이 컸지만 오랜만에 충분히 숙면을 취했다. 아침 5시경 잠을 깼다. 화장실을 갔다가 오면서 보니 창밖이 훤하다. 달리는 기차 출입문에 메달려 밖을 구경하는 것도 인도에서는 가능하다.

우리는 드디어 델리에서 동남쪽으로 595킬로미터 떨어진 에로틱도시 카쥬라호역에 도착했다. 오전에 서쪽 애로틱 사원을 먼저 구경했다. 사원 건축물 외벽에 각종 조각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점심식사 후 오후엔 동쪽 사원을 갔다. 오전에 본 애로조각상은 없었다. 조각의 형태로 봤을 때 같은 조각가의 작품인 듯 한 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자이나교 사원도 가 보았다. 조금 현대적인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이곳과 가까이 있는 가이드 데이비스 시골집에 갔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로 100여 미터 걸어갔다. 골목 초입에 다다르자 북소리 악기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악기 연주자를 뒤 따라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이 현란하게 손과 허리를 흔들면서 춤을 추며 간다. 멀리서 온 손님을 환영하는 의식이란다. 한바탕 대문 앞 골목에서 춤판이 끝나고 가이드 데이비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와서 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문 입구에서 이마에 붉은 물감으로 점을 찍어준다. 손님을 환영하고 행운을 빌어 준다는 의미란다. 그리고 라씨를 한 잔씩 주었다. ’라씨는 우리나라 요거트 같은 것에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곁들여서 맞을 낸 것이다. 우유를 발효해서 만든 것이다. 거기에 첨가하는 것의 종류에 따라 파인애플 라씨‘’바나나 라씨등 다양하게 맛을 낼 수 있다. 내 입맛에는 딱 이다.

우리는 자리를 옥상으로 옮겼다. 과일과 함께 이번엔 짜이를 한 잔씩 주었다. ’짜이는 밀크티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유에 생강을 넣고 끊여서 맛을 낸 것이다. 우유를 먹는 것보다 먹기가 좋다. 내겐 짜이도 입맛에 맞다.

문밖에서 한바탕 춤판을 주도한 무희도 합석했다. 그 무희는 여장한 남자란다. 신체는 남성과 여성을 다 가진 중성이다. 성향은 여성에 더 가깝다. 화려한 색상의 인도 전통의상 사리(Saree)를 입고 찐한 화장으로 치장한 여성처럼 보인다. 이들을 히즈라(Hijra)라고 부른다. ‘히즈라는 평범한 사회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해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어 집단으로 살아간다. 각종 행사에 와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내 바로 근처에 와 앉았다. 찬호씨가 말을 걸어 보니 걸쭉한 남성의 음성이다. 팔뚝의 잔 근육도 있어 남자의 몸도 엿 보였다. 하지만 가슴도 있고 전체적 분위기는 여성이다. 나는 좀 징그러운 느낌이 들어서 가까이 하기 싫었다. 다시 옥상에서 그들과 춤판 2라운드가 진행되었다. 나도 옥수형의 권유로 마지못해 조금 참여하는 시늉만 했다. 나는 워낙 음주가무에 영 소질이 없다. 노래와 춤 잘 추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

우리는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인도 카쥬라호근처 중상류 가정집을 방문해서 그들 문화를 체험해 본 소중한 경험으로 남는다. 대문 밖을 나서 돌아오는 길에도 마을 아이들이 계속 따라오면서 구걸을 한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취침을 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해서 440분에 버스로 바라나시까지 12시간의 긴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쥬라호 근처에는 특별히 즐길 위락 시설이 없기도 했다.

새벽 440분에 아침밥도 안 먹고 출발했다. 여느 때처럼 창숙이가 안내멘트를 시작했다. 출발 10여분이 지나서 안내 멘트 도중에 호텔 냉장고에 총각김치를 두고 온 걸 알았다. 급히 차를 돌렸다. 그나마 빨리 안게 다행이다. 오늘 점심 반찬으로 잘 익은 총각무우 김치가 기대된다.

차창 밖 시골풍경은 밀이 누렇게 익어 있고, 여기저기서 추수를 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낮에는 더운 관계로 아침 일찍 움직이는 것 같다. 도로 사정은 열악했다. 겨우 차 두 대가 비켜갈 정도의 폭이다. 군데군데 교량공사도 한다. 그럴 때는 우회하느라 차량이 더 덜컹거린다. 소들이 무리지어 지나가기도 한다. 가이드는 물소들이 출근하고 있단다.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밖에서 무리지어 놀다가 퇴근 한단다. 건기라서 개울에 물이 메말라 있다. 고갯길을 내려 갈 때는 지그제그로 난 길을 한 번에 꺽지 못하고 후진을 반복하며 겨우 내려 간다. 그 정도로 도로가 비좁다. 도로 가장자리는 아스팔트가 손상되어 움푹 파여 있다. 도로 옆 전신주들은 반듯하게 서 있는 게 드물다.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삐딱하게 전선에 의지해 서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부러질 것 같이 가는 콘크리트 전신주다.

다음 날, 우리는 도로옆 음식점에 들러서 아침을 해결했다. 부엌 조리대를 빌려서 창숙이가 직접 라면을 끓였다. 직접 한식을 조리해 먹으려고 한국을 떠날 때 각자 라멘과 쌀을 가져오게 했다. 라면과 함께 잘 익은 파김치와 총각김치 달랑무우는 환상의 궁합이다. 지금껏 먹은 라면맛 중에서 최고다. 수천킬로 떨어진 인도까지 와서 입이 호강한다. 창숙이에게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숙제로 남는다. 학창시절부터 민주투사였던 창숙이가 민주주의가 꽃피울 토대가 무었인지? 근본을 잘 알고 실천하는 것 같다. 언젠가 인기리에 상영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나온 명 대사가 생각난다. 동막골에 온 북한군과 촌장 사이에 오간 대화다.”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뭡니까?“ ”일단 뭘 마이 묵여야제.“

또 한참을 달렸다. 창 밖의 풍경은 아침과 비슷했다. 도로 옆에 죽은 소의 시체가 그냥 방치 된 것도 봤다. 워낙 건조해서 바싹 말라있다. 어떤 곳을 지날 땐 나무에 원숭이들이 무리지어 있기도 하다. 중간 중간 도시들 통과할 때면 시장에 과일과 오이 감자 양파 등을 파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 시골장터를 연상시킨다. 각종 잡화점, 가전제품을 파는 곳, 건자재상도 눈에 들어온다. 지나가는 화물차는 운전석 주위 앞 부분이 유난히 화려하다. 각종 장식으로 온갖 치장을 하고 다닌다. 1차 여행 때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났다. ”화물차는 운전사 입장에서는 그들의 집이나 마찬가지다. 넓은 인도에서 이곳저곳 다닐려면 며칠을 가기도 한다.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루중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다.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종교적 용품으로 장식을 많이 한다.“

기고자 박정선 프로필 /E-mail주소 :hometech9988@naver.com

 

서울보증보험(주)에서 1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퇴직 후 17년간 자영업을 하면서 부동산 공부와 투자를 했다. 도심의 다가구주택과 신도시 상가주택 투자경험을 두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1.<대한민국20대,부동산에 미쳐라/2016.11>

2.<나는 다가구투자로 꼬마빌딩 4채의 주인공이 되었다/2018.9> 

현재 <집테크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자산리모델링을 통한 노후대책에 관해 컨설팅과 강의를 하고 있다. 

- 구의동 <집테크연구소>에서 박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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