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생(未生)들에게
[기자수첩] 미생(未生)들에게
  • 이예린 기자
  • 승인 2019.10.24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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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초부터 일본에 애착을 갖고 한우물만 파던 친구는 별다른 언질 없이 발표된 인트라넷 공지를 통해 동남아팀으로 이동 당했다. 덕분에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며 점심시간에도, 퇴근 후에도 책을 들여다본다. 그는 학창시절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한다며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지방에서 상경한 친구는 갑자기 직면한 무급휴가 제도에 울며겨자먹기로 휴가를 냈다. 생활비와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당장의 보름도 무작정 쉴 수 없는 노릇이라 단기알바를 구하기도 한다. 타 회사에 이력서를 넣으려 시도하지만 업계 전체적으로 불고 있는 취업난에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항공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본사에서 업무를 보던 중심부의 실무진들은 조직개편으로 일명 좌천(左遷) 당했다. 졸지에 새벽부터 공항으로 출근해 고객들의 샌딩을 돕는다.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친구는 어려워진 회사의 재정상황으로 총무, 비서, 예약발권 세 가지 일까지 모두 도맡아하여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란다며 토로한다. 덕분에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던 마케팅업무는 뒷전이 됐다.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신입직원이 구조조정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을 대리가 구해주기도 했다. 자신은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고 쌓아놓은 경력이 있기에 이직 할 수 있다며 우정퇴사(?)를 해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근 몇 달간 여행업계에 일어난 미생들의 작은 이슈다. 최근 여행업계에 부는 실적하락과 재정난의 칼바람으로 경영진 개선, 인력과 조직의 대폭적인 감축 등 조직 슬림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내국인의 해외여행 비율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패키지 여행사들과 항공사들은 갈수록 적자를 보이고 어려워진다고 한다. 모든 직원을 품고 갈수 없는 임원진들의 선택도, 갑자기 내쳐지는 직원들의 입장도 모두가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힘들수록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허나 사람이 곧 자산인 관광업계에서 그들의 노고와 수고를 잊어서는 안된다.

미생(未生)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 등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태를 이야기한다. 완전히 죽은 돌. , 사석(死石)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완생(完生)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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