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애틀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시애틀을 사랑하는 이유
  • 임채호 기자
  • 승인 2020.01.06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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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성노트 속 SEATTLE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고인이 된 히스 레저와 <500일의 썸머>로 유명한 조셉 고든 래빗의 풋풋한 모습과 동시에 케리 파크개스 워크 파크등 시애틀 외곽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말미 등장하는 여주인공 캣은 자신을 속인 남주인공 패트릭에게 난 당신이 하는 말도, 머리 모양도 싫어, 차를 운전하는 방식도(중략)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건, 난 네가 싫지 않다는 거야. 조금도, 아주 조금도, 전혀 싫지 않다는 거야라고 말하며 아무리 단점을 나열해봐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랑을 몰아낼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실 시애틀도 장점 가득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첫날을 빼고는 종일 비가 내리거나 흐렸고, 흐린 날씨 때문에 고대했던 경비행기는 타보지도 못했다. 쌀쌀한 날씨에 짚라인을 타며 추위에 떨기도 했고, 즐겨 먹던 매콤한 음식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꼭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이 시애틀이다. 아마 콩깍지가 씌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쿨하게 인정하고, 영화와는 반대로 시애틀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풀어보려고 한다.

시애틀=임채호 기자 lch@ktnbm.co.kr

 


 

<IN DOWNTOWN>

 

여행지는 저마다 특유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시애틀의 감성은 색깔로 표현하자면 회색에 가까울 정도로 어딘가 독특했다. 시애틀 다운타운에 건물들은 궂은 날씨 아래 태어나서인지 비 내리는 날에 유독 어딘가 적막하고 울적하지만, 그 안에 짙게 칠해진 무드가 유난히 빛을 발한다. 보통의 여행지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사진과 영상은 물론 일정진행에도 방해되는 반면, 도시 자체의 분위기가 흐린 날씨와 어울리기 때문에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정이 될 수 있다.

시애틀은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Retro)’ 스타일 여행지에도 적합한데, 도시 곳곳을 걷다 보면 VHS 스타일 비디오로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다운타운에서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잘 만끽할 수 있는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가을에 시애틀 여행을 결정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쓸쓸한 분위기와 초겨울과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기에 점점 빛나기 시작하는 거리의 조화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시가 쓸쓸한 감성을 내뿜다 보니, 여행지에서 떠오르는 음악도 잔잔하고 분위기 있는 팝 음악이 떠오르곤 한다. 음악과 함께 거리를 걷다 보면 평범한 표지판 옆에 세워진 자전거 하나도 무척이나 감성적으로 다가오곤 한다. 시애틀의 주류 음악인 밴드 음악은 물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맥 밀러(Mac Miller)의 음악, 앰비언트 팝(Ambient Pop, 잔잔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무드를 가진 팝 음악 장르) 장르를 주로 다루는 시가렛 에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의 음악과도 잘 어울린다.

 


 

<IN SPACE NEEDLE>

사실 시애틀에 푹 빠지게 된 순간은 첫날 일정으로 방문한 시애틀의 랜드마크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봤을 때부터다. 상공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주황과 분홍빛이 섞인 하늘과 함께 바라본 시애틀 다운타운의 풍경은 첫눈에 반했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벅찬 감동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시애틀을 더욱 아련하게 만들고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애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지 않은 사람도 이곳에 올라오면 그 영화의 제목이 떠오르며 공감 갈 정도로 시애틀 여행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1962년 건축된 스페이스 니들은 특히 최근 1년간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오픈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우선 전망대 외관의 변화가 눈에 띄는데 기존 창가에 설치된 철조망을 제거하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르는 전면을 통유리로 교체했다. 이 덕분에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에서는 탁 트인 시애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전망대를 따라 설치된 유리벤치인 스카이라이저는 포토스폿의 역할과 더불어 아찔한 전망대 체험을 선사한다.

한층 아래로 내려가면 150m 높이에 새롭게 설치된 더 루프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세계 유일의 공중회전 유리 바닥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유리 바닥 위를 걸으며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짜릿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다. 더불어 같은 층에 새로 생긴 아트모스 와인바에서는 360도 전망의 시애틀을 음료와 함께 여유롭게 조망할 수 있다.

스페이스 니들 주변으로는 경이로운 유리 공예를 만날 수 있는 치훌리 가든과 시애틀 음악의 역사는 물론 공포, 과학 분야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음악 박물관이 인접해 있는데, 이곳들을 동시에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다운타운에서부터 모노레일을 타고 접근한 뒤 시티 패스를 이용해 반나절 일정으로 동시에 즐기는 것이 좋다.

 


 

<IN PIKE PLACE MARKET>

스페이스 니들과 함께 시애틀 대표 관광지로 손꼽히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빈티지한 시애틀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시애틀의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1907년 공식적으로 개장한 이후 항구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동시에 성장했다. 항구도시답게 해산물이 유명하며, 신선한 과일과 채소류도 판매한다.

입구부터 눈에 들어오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머금은 시장 간판을 지나면,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돼지 동상 레이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 보면 최초의 스타벅스, 스타벅스 1호점을 만날 수 있다. 스타벅스 1호점의 가장 큰 특징은 개점 당시 만들었던 로고와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고 속 인물은 바다의 인어를 모티브로 제작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재의 로고와는 전혀 다르다. 때문에 원조 로고가 그려진 텀블러, 원두를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근방에는 빈티지 감성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껌벽(Gum Wall)’이 위치하고 있다. 포스트 앨리 근처 붉은 벽에 사람들이 껌과 함께 메시지를 남기며 형성된 껌벽은 흉물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독특한 매력 덕분에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다. 껌벽은 2015년 위생 문제로 1톤가량의 껌들을 모조리 제거했지만, 관광객들이 자발적으로 껌을 다시 붙이기 시작하며 재형성됐다.

 


 

<IN FREMONT>

시애틀 다운타운을 지나 외곽 동네인 프리몬트에 가게 됐다. 다운타운에서 이미 좋은 느낌을 받았던 터라 시애틀의 외곽 지역은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렇게 프리몬트에 도착하자마자 다운타운과는 정반대의 소소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다시 한번 시애틀에게 푹 빠지게 됐다. 다운타운에서 우울한 감성이 뭍어 나는 팝 음악이 떠올랐다면, 프리몬트에서는 가사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로파이(lo-fi)’ 음악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프리몬트에서 비로소 시애틀 관광청의 한은정 대리가 말했던 시애틀 특유의 갬성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운전기사였던 에이미는 정말 친절했다. 프리몬트의 풍경을 감탄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는 일정에 없던 곳을 두 군데나 데려다주었는데, 하나같이 프리몬트를 즐기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었다.

특히 프리몬트를 일요일에 방문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일요일, 프리몬트에서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다음가는 공공 시장 프리몬트 선데이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1990년 개장한 선데이 마켓은 공예품, 골동품, 수집품, 의류, 푸드트럭들이 있는 유럽식 벼룩시장으로 4월부터 10월까지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개장하고, 11월부터 3월까지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개장한다. 수집품을 파는 가게들이 인상적인데, 90년대 힙합 앨범과 올드팝 LP판을 비롯해 빈티지 구제 의류들이 한 데 모여있다.

또 하나의 명소는 다리를 수호하는 프리몬트 트롤을 만날 수 있는 오로라 브리지로, 오랫동안 프리몬트 다리 아래 있던 프리몬트 트롤은 이곳 오로라 브리지로 옮겨졌다. 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은 거대한 트롤과 함게 인증샷을 남기려는 인파로 언제나 북적인다.

이외에도 프리몬트에는 초콜릿 투어를 즐길 수 있는 초콜릿 공장과 함께 소소하고 편안한 동네 분위기와 각자의 특색있는 메뉴를 지닌 브루어리들이 근방 1~2km에 단지처럼 모여있어 관광청 홈페이지를 통해 가보고 싶은 곳을 미리 선정한 뒤 방문하면 좋다.

 


 

<IN KERRY PARK>

프리몬트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즐긴 뒤 숙소로 향하던 도중, 에이미는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보고 꼭 가보고 싶었던 케리 파크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프리몬트에서 케리 파크로 향하는 길,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Will to PowerBaby I Love Your Way는 시애틀을 그릴 때마다 듣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야경을 볼 생각에 설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 분위기를 온전히 담고 있기에.

케리 파크는 시애틀 퀸 앤 힐 남쪽에 위치한 공원으로 1972년 케리 부부가 시애틀 시에 기증했다. 전망이 매우 좋기로 유명하고, 시애틀 다운타운, 엘리엇 베이, 스페이스 니들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케리 파크는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일품인 덕분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케리 파크와 더불어 관광청 직원이 추천하는 지역은 개스 워크 파크. 레이크 유니언 북쪽 해변에 위치한 이 공원은 1956년까지 시애틀 열 병합 발전소로 운영되다 1962년 공원 형태로 조성됐다. 폐공장 건물과 시애틀 수평선, 도시 풍경이 이질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 때문에 시애틀 로컬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피크닉 장소다.

 


 

<IN SAWYER>

시애틀 관광청 추천 레스토랑 ‘Sawyer’는 프리몬트 지역을 둘러보고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미식의 도시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일품인 음식 맛은 물론, 타 레스토랑 대비 가격도 저렴한 가성비레스토랑이다.

친절한 종업원들도 좋은 기억을 안겨주는데 한몫했다.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은 채 서빙을 하는 모습은 맛과는 별개로 이곳을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시애틀 관광청의 타마라가 말했던 “Welcoming”의 의미는 Sawyer와 같이 우리가 방문하는 곳곳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가 서툴더라도 주문을 천천히 되짚어 주고, 마주치면 미소를 건네는, 그들이 남긴 좋은 인상은 시애틀을 사랑하는 이유를 적을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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